편지를 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다 변영주 감독의 96년도 인터뷰 내용을 찾았습니다. (1996년 10월 격월간 평등 창간호, 평등의 대화-변영주 감독과 함께, <영화는 나의 사랑, 영화는 나의 투쟁 중>) 흥미로운 인터뷰라 꽤 길게 가져와 보았습니다. 전문을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
그 여자는 씩씩하다. 그녀의 얼굴에선 당당함이 느껴진다. 우렁찬 목소리는 거침이 없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국민 모금으로 제작한 영화감독 변영주. 동숭씨네마에서 <낮은 목소리>의 재상영을 시작한 첫날 9월 7일, 그녀 를 만나러 극장 나들이를 하였다.
민우회와 그녀는 지난 89년 사무직 여성들의 일상과 투쟁을 그린 소형영화,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의 제작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해 회고하면서 말문을 텄다. 그때의 작업으로 필자와도 친분이 있는지라 그는 대뜸 그런데 언니, 결혼하셨어요?" 하면서 질문의 화살을 거꾸로 돌렸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필자도 질문의 내용을 바꿔 버렸다.
<낮은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매체에 많이 나왔으니까.
- 변영주 감독은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나는 결혼제도를 거부합니다. 그건 쓰잘데기 없는 제도잖아요? 결혼과 동시에 맺게 되는 수많은 인적관계,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 얽히는 관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랑 연애해 보고 싶은 적 없었나요?
= 어떻게 적하고 연애를
- 남자를 적으로 규정하세요?
= 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예요.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은 단지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의 자매애를 전면에 내세우는 모든 활동가를 포함하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여성이 여성과 성관계를 갖느냐 안 갖느냐는 중요하지 않죠.
가부장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 결혼제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이 레즈비언입니다. 문제는 그 단어에 대해 너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여성 운동가들은 동성애자죠 레즈비언이다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실제로 어떤 레즈비언보다도 여성주의적인 운동을 전개해 놓고 뒤로 물러서는 듯한 태도, ‘저는 레즈비언이 아니지만’, ‘저는 남성과 적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하는 것은 참 웃기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저는 사장님과 적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인권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하는 것과 절대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남녀관계를 적으로 봐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를 반대하지 않고서는 어떤 길이 올바른 길인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죠.
- 그렇다면 당신의 의견과 다른 남자와는 연대하지 않습니까?
=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남자들에게 정치적으로 궁형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그들의 성기를 잘랐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지요. 정치적으로… 저는 제 남자 스탭들을 아끼는데 그들은 자기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아요. 자기 자신을 경계하려고 노력하지요. 자기 자신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여성을 억압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치적으로 자르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남자들과만 같이 일할 수 있습니다.
-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습니까?.
= 여성민우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별 차이 안나요 실제로 대중적이지도 않으면서 대중적인 것에 연연해하고 있잖아요. 이를테면 남자들이 적이 아니라고 외치면 남자들이 수천 명 모이나요? 저는 문제의 핵심을 올바로 짚어야 한다는 것이죠. 남성들 모두 나가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정치적인 권력관계들을 되짚어야 한다면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 변영주 감독이 생각하는 여성성이란 어떤 것이죠?
= 좋은 건 여성성이고, 나쁜 건 남성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우리 두 사람의 장점을 통틀어서 여성성이라고 불러요. 남성성은 권위주의적인 것, 폭력적인 것, 큰소리치는 것, 제 멋대로인 것 그런 걸 다 남성성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적인 거요? 올바른 것, 정의로운 것, 침착한 것, 불행에 대해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이죠. 전 참 여성적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서 언제나 끔찍한 건 저를 남성처럼 볼 때예요. 전 정말 남성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영화를 만드는 건, 할머니들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건, 여성인 제가 자랑스럽기 때문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