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독순
생존, 생존, 생존 (나는 생존자다)
2025.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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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두 번의 메일을 꼭 보내는 것이 저의 목표 중 하나인데, 이번 달에는 기어코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까지 아주 바쁜 날들을 보냈어요. 그러다 숨 좀 돌리나, 하는 순간에 다시 바빠졌습니다. 지인분을 통해 단기직 일자리를 하나 얻게 되었거든요. 갑작스레 그만둔 전임자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행사 2주 전부터 출근한 저는... 야근의 늪에서 헤엄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제가 맡았던 직책은 이전에 맡았던 업무들과 다소 다른 업무였어요.
영화제 인더스트리 팀의 피칭 담당자가 되었거든요.
업무에 투입되는 순간까지도 인더스트리 팀 업무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피칭에 대해서도 아는 지식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하지만 늘 저의 목표는 하나, ‘어떻게든 되게 한다.’는 것이기에 이번에도 어찌저찌 끝없는 야근을 통해 업무를 해낼 수 있었습니다.
피칭이라고 함은 일종의 자기 PR인데, 제작비를 투자받기 위해 감독 혹은 제작자가 본인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투자를 요청하는 행위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담당했던 피칭은 다큐멘터리 피칭이었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다루는 팀도 있었고, 혹은 아주 개인적인, 또는 어떠한 타인의 삶을 다루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다큐멘터리들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수급하고, 피칭 자료를 전달받고. 출판과 실제 피칭 때 오퍼레이션 서브까지. 굉장히 다방면의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본 피칭이 이루어질 때까지 수급받은 자료를 마음으로 들여다보지는 못했어요. 자료들은 제게 어떤 의미로는 활자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오탈자가 있는지, 기존 자료에서 변동은 없는지. 제출 사양과 동일한지. 오퍼레이션을 위한 요건에 맞는지 등등. 그런 것들만 파악해도 하루가 모자랐거든요.
유일하게 제가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 본 피칭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신경 쓸 것들이 많았지만 (조명 온오프, 트레일러 상영 시간, 대본과 슬라이드 확인 등등…) 그럼에도 트레일러가 나오는 동안에는 그 속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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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피칭에 참여하는 작품들은 제작, 기획 단계와 제작 초반에 있는 경우가 많아 작품 내용을 제가 편지에서 적지는 못할 것 같아 두리뭉실하게 적을게요. 어떤 사건의 피해생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보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어요. 이들이 한걸음,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보내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다시 제 대학 생활을 떠올리게 됐어요.
미투라는 선언이 세상으로 튀어나오던 시기에 저는 대학에 다녔고, 저희 학과도 그 시기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은 대자보를 통해, 페이스북을 통해 고발의 목소리를 냈고 학과 차원에서 대응하고자 저희는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을 구성해 대리인으로 활동을 했어요. 직접적인 활동 시기는 6개월 남짓이었는데 7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저는 자주 그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때는 겁이 없었고, 깊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저 분노했거든요. 저는 제 이름을 노출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그 결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것들이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트레일러 속 피해생존자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걸음을 내디디려고 해요. 피칭이 끝나고 나면 디시전메이커(심사위원)들이 질의응답을 하는데요, 한 분이 영화의 끝을 묻더라고요. 그 질문에 ‘끝이 없어도 된다고, 그들이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할 수 없다’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습니다. 무대 반대편의 오퍼레이팅 자리에서 정말 벌떡 일어나서 소리 지르고 싶었어요. 당연히 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타이머를 확인하고 다음 팀 자료를 점검하고 있었지만, 심장이 뛰더라고요. 그때부터 머릿속에 한 질문으로 가득찼습니다. ‘끝이라는 게 있나? 끝날 수 있나?’ 라는 질문이요.
제가 저의 자리에서 혼란스러워할 때, 감독은 그들의 지난한 시간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결과가 나올 수 없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놓였어요. 안도감은 들었으나 제 머리를 채운 질문은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들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는 당위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 어떤 결과로 그것이 해소되리라 믿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이 과연 당위적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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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아니에요. 대리인을 자청했을 뿐이죠. 그런데도 저는 자꾸만 그때로 되돌아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부당한 폭력을 마주했을 때, 하면 안 되는 말을 내뱉는 것을 직시했을 때. 누군가가 폭력 앞에 스러지는 순간을 볼 때.
무력하고, 분노했던 때로 그대로 회귀하게 됩니다.
심지어 누군가가 폭력에 맞설 때, 혹은 승리했을 때도 과거로 되돌아가요. 왜 나는 그러지 못했지, 그때 그렇게 말할걸, 그때 조금 더 지독하게 맞설 걸 등등… 지금 되뇐다고 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돌아갑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런 걸 트라우마 혹은 내상이라고 부르는 건가 봐요. 누군가는 저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 말라고, 혹은 사건은 종결되었으니 잊으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지만, 그런 말은 사실 전혀 와닿지 않아요. 왜냐면 제게는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이 상흔을 없애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폭력이 없어져야 가능할 것만 같아요.
피칭이 끝난 밤, 숙소에 돌아가 야근을 위해 자리에 앉았어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데 그냥 그때부터 멍-하더라고요. 낮에 저를 찾아온 질문이 고요한 밤 다시 저에게 찾아온 거죠.
피해당사자도 아닌 내가 피해자가 된 것 마냥, 계속해서 과거를 복기하는 꼴이 좀 우습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내가 무슨 권리 혹은 자격으로. 혼자 모든 고통을 안고 있는 것처럼 구나, 싶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냥 문득 그 밤에 나도 피해자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무려 7년이 지난 시점에서요.
어떤 사건은 정말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구나. 그것이 실제로 내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어도 내게 영향을 주었다면 나 역시 피해자구나. 그래서 내가 계속 과거로 돌아가는 거였구나 하는 아득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정말로, 이렇게 늦게 말이에요. 야근을 하다 쬐끔 울었습니다. 물론 그러고 다시 타닥타닥… 업무를 봤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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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를 처음 봤을 때 며칠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너무나 많은 폭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너무너무 많은 사람이 부서지고 무너진 걸 목도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거든요. 정명석 개새끼, 미친 성중독자새끼, 찢어 죽일 새끼. 이런 말들을 내뱉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알고 있음과 별개로 욕은 합니다) 누군가는 또다시 스스로의 기억과 감옥에 갇힐 테니까. 그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얼마 전에 새로 업로드된 <나는 생존자다>를 봤습니다. 며칠 감정의 폭이 커지겠구나 짐작은 했지만,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싶었어요. 그들이 계속 생존했으면 좋겠으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작은 메시지라도 덧붙이고 싶었으니까요.
형제복지원, JMS, 지존파, 삼풍백화점. 이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는 피해생존자들은 정말로 끝없이 시간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접촉해요. 이것들은 과거가 아니라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건과 종결. 이런 단어들로 타임라인을 지을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고 말해요. 그래서 피해생존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시간이 지났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에서도 생존해야 하고요.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생존해나가야 합니다. 생계라는 문제에서도 생존해야 하고요. 생존이라는 것은 정말 끝없이 노력해야만 유지된다는 지점에서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이들은 우리가 아는 사건들의 피해 생존자들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건들의 피해 생존자는 몇이나 될까요? 등장하지 못한 피해생존자들, 그들의 가족. 피해당사자는 아닐지언정, 피해자들을 아는 사람, 경험한 사람, 목격한 사람, 사건의 언저리에 있는 저 같은 사람들까지요. 그러니까 사실 모두가 어떤 사건들의 생존자인 거예요.
운이 좋아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역시 생존해 있는 겁니다.
생은 잔인하고, 생존은 치열합니다. 그래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날들이더라도. 그래도 생존한 우리들에 수고하고 있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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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이라는 말이 가끔 거대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요, 그냥 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살아계세요. 외롭고 지독하고 지난한 삶이어도. 우리 다같이 살아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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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편지 하단부 링크(독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구글폼) 를 통해 편지로 써주었으면 하는 영화를 신청할 수도, 저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남기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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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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