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고하, 귀천. 이런 단어가 옛날 단어들 같지만, 사뭇 낯선 단어는 아니게 느껴집니다. 과연 귀한 것은 무엇이고 천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해요. 노동절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일까요?
4월 28일은 세계 산업재해 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법정기념일을 맞이했습니다. 1993년 태국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 이후 산재 노동자의 날이 지정되었다고 해요. 태국 케이더 완구공장 화재 참사는 18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469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였다고 합니다. 봉제 인형 공장이라 천, 솜, 플라스틱 등 화재에 취약한 재료들로 가득 찬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스프링쿨러와 화재경보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당연히 화재 대피 훈련 같은 건 한 번도 진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문을 잠가둔 이유는 인형 도난을 막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내부에 있던 노동자 1,400여 명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비상계단이 무너지기도 했고, 공장을 지을 때조차 불에 취약한 골조를 사용해서 화재 후 30분도 지나지 않아 일부 동은 무너졌고 창에서 생존하기 위해 뛰어내렸다 사망한 피해자들도 다수였다고 해요. 이 참사의 시작점은 작은 담배 불씨였다는 점에서 더 속이 답답합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시골 출신의 여성, 아동 노동자였다는 점에서 취약한 이들이 겪은 이 비극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공식 발표로는 18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역 방송국은 사망자를 240명으로 추산한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담배꽁초를 버린 직원은 고작 징역 10년 형을 받았고, 공장 문을 잠근 공장주와 관련자들(공장의 이사, 엔지니어, 주주 등의 임원 14여 명)은 무죄를 선고받고 공장 측엔 벌금형만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HEARTACHE OF TRAGIC 1993 KADER TOY FACTORY BLAZE LINGERS ON)
산재 노동자의 날 구호는 ‘Remember the dead, Fight for the living.’입니다. 죽은 자를 추모하고(기억하고) 산 자를 위해 투쟁하라 는 문장입니다.
제가 딱히 사회면을 열심히 읽는 사람도 아닌데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가는 이름들이 있어요. 지하철을 타려고 서 있다가 문득,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사망한 노동자가 생각나고, 쿠팡에 단기 알바를 뛰러 갔을 때는 컨베이어벨트를 바라보다가는 문득 끼임 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 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2인 1조로 일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사망 사고였죠. 빵을 사 먹으려 편의점에 가서도 spc에서의 끼임 사고가 문득 떠올라서 차마 살 수 없어 내려놓는.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코끝에서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도무지 살 수가 없어요. 그냥 기억이 그 업체들을 자연스레 거부해 불매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생각하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 문득. 그 일들이 기억나요. 목숨을 잃은 이들이 제 또래여서일까요? 그들은 더이상 나이를 먹을 수 없어 저보다 어린 나이로 남아 있다는 그 사실이 참 씁쓸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은 적당한 시간을 일하길 원하면서 동시에 타인은 나를 위해서 일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택배는 눈만 감았다 뜨면 도착하길 원하면서 과로사 사건을 보고는 ‘건강 관리 좀 하지…’ 라고 말하죠. 깨끗한 거리를 보고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쓰레기차와 환경미화를 위한 인력은 눈에 보이지 않길 원하는 듯 그들을 보면 표정을 찡그리곤 합니다. 물론 직업에서만 이런 태도를 보이진 않습니다. 나는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지만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은 시끄러워하죠. 지하철은 정시에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인력 감축에는 눈을 돌리죠.
편지를 쓰면서 조금 더 찾아봤는데 2019-2023년 노동재해 통계자료를 보면 5년간 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 군인, 공무원, 교직원(사립), 어선원, 농어업인은 1년 평균 18만 8725명으로 하루 517명꼴이라고 합니다. 재해 사망자는 2570명 (하루 7명가량)에 달한다고 하고요. (출처: [단독] 하루 7명의 노동자, 군인, 선원 숨지는 ‘재해 공화국’, 한겨레 신문) 그런데 촬영 현장에 있으면서 촬영 중에 다친 사람을 꽤 자주 보는데 이들이 보험 처리를 받는 과정도 지난하고 쉽지 않았던 걸 기억합니다. 이런 사례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이 통계 자료의 수치는 더 높아지겠죠.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정여립을 떠올려 보면 신분제가 없는 세상을 꿈꿀 수도 없는 시절에 어째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전, 란>에서는 이런 문장도 나옵니다. 개는 기르는 것이옵고, 종은 부리는 것이라고요.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집니다.
전란에선 전쟁이 나 난(亂)이 일어나는데, 어째서 오늘 편지에서 적은 일들은 전쟁 없이도 이렇게 잔혹할까요. 4월의 마지막 날 씁쓸한 편지를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에도 출근하는 주변인들이 참 많은데 언젠가 우리 모두의 노동이 동등한 가치로 대우받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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