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이후 제 삶은 조금 단순해졌습니다. 눈을 뜨고 뉴스를 보고, 뉴스를 보다 불안해하고. 불안해하다 뉴스를 다시 보고. 겁이 날 땐 조용히 집에서 은신하고, 겁이 조금 덜 날 땐 시위에 참여하고. 그런 생활이 한 달을 넘게 지속되었어요. 최소한 주말마다는 시위에 참여하고자 해서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나가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재취업이었습니다. 서류 탈락 연락을 받을 때에도, 면접 탈락 연락을 받을 때에도 이게 다 무너진 경제 때문이라며 입을 삐쭉거리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또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며 다시 원서를 쓰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엔 한계에 부딪히다, 어느 날엔 한계가 없을 것 같은 기분에 들뜨는. 그런 이상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가 뭘 하고 싶고, 뭘 좋아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제 삶에서 취준이라고 하는 단어가 등장한 기간은 별로 길지 않습니다. 부산에 있을 때엔 얼레벌레 알바와 근무를 번갈아가며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서울에 올라오고나서도 어렴풋한 이상을 따라 일할 수 있었어요. 뮤지컬 스탭, 뉴스 방송사를 거쳐 소품팀에 들어간 그 과정 모두 큰 공백 없이 진행되었거든요. 개중에서 공백이 있었다 한들 그 기간이 한 달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흔히 말하는 사무직의, 정규직이 되려고 하니 쉽지 않네요.
하루는 웬종일 붙어 자기소개서를 쓰다, 또 다음 날 그걸 검토하며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은 무엇인지, 내가 갈망하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만을 반복하고 있답니다. 그렇게 억지로 글을 짜내다보니 편지를 쓰는 것마저 짐처럼 느껴져 미루다 키보드를 두드리게 돼요.
시위 속에서 반복되는 의견 개진을 바라보면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다가도 그러한 발언이 혹시나 내 삶에 영향을 줄까 하는 생각을 반복하며 주저하게 됩니다. 알짱알짱 소극적으로 시위 끄트머리에 서서 목소리를 내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위엔 추울까, 독감이 유행이라던데 하는 핑계를 대며 나아가지 못하는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마주하는 날들입니다. 이런 스스로가 너무 밉다가도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는 있다고 스스로 믿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제가 가장 즐겁게 들었던 수업은 한국사 수업이었어요. 다양한 시간대에 존재했던 투쟁하는 사람들의 삶을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거든요. 그때는 아주 당연하게 나 역시 시간을 돌린다면 투쟁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의 투쟁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워 한국사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는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 나이의 제가 생각했던 건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당연히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하는 거 아냐?’였던 것 같습니다.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겁쟁이가 아니라면 당연히 투쟁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현실적인 겁쟁이 어른이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내가 겁쟁이가 아니고, 투쟁할 일이 생긴다면 목숨을 걸 수 있으리라고 저는 20대 중반까지도 생각했답니다. 삶에서 아주 중요한 정신이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거든요. 그것을 무시하고 살거나, 혹은 보지 못한 척 사는 그 모든 태도가 거짓말처럼 느껴져 그런 삶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난 해 12월을 기점으로 무너졌죠. 왜냐면, 저는 그 날 아주 무서웠거든요. 국회로 나가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도 무서움에 정말 몸을 덜덜 떨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밤새 방을 서성였거든요. 내가 생각했던 아주 당연한 정의라고 하는 것을 실현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 생각을 그때부터 했습니다.
매일 뉴스를 보면서도, 넷플릭스와 왓챠의 상위 랭킹을 암살, 밀정, 영웅, 서울의 봄 등의 영화가 차지하는 걸 보면서도 그저 덜덜, 떨 뿐이었어요. 그 모든 이야기가 가진 의미는 제게 알 바가 아니게 된 거죠. 그저 허상 같고, 남의 이야기 같았어요. 크레딧 끝에서 이 이야기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는 문장도 아무 의미가 없었죠. 그러면서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저러지?’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시가 두어 개 있는데요, 박노해의 ‘어둠 속에서도 빛이어라’ 와 한강의 ‘유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