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편지가 다소 길었던 것 같아 이번 편지는 편안하게 써볼까 합니다. 다들 가슴 깊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있나요? 흐려지고 사라지는 것이 기억이라지만 동시에 어떤 기억들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죠. 더 옛날, 더 옛날로 흘러가다 보면 그 기억은 어느새 나의 뿌리까지 가 닿는 것 같습니다.
<애프터 양>은 테크노 사피엔스, 흔히 말하는 안드로이드 인간인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춘 것으로부터 시작해요. 우리가 흔히 보던 SF 영화들에선 여기서부터 ‘사건’이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사실 그 기억 속에 어떤 비밀이 있다던가… 하지만 <애프터 양> 속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고 차분하게 양이 누구였는지 찾아 나섭니다.
테크노 사피엔스들은 2-3초간 짧게 이어지는 메모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영상이 저장되는 기준은 알 수가 없다고 해요. 테크노 사피엔스, 그러니까 기계 인간은 왜 어떤 특정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파편화된 기억이란 무엇인가. 그 저장 메커니즘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애초에 기억이란 파편화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죠. 결함 덕에 모든 것을 온전히 기억하게 되는 저주를 다행히 피한 인간은 그 파편들로 만들어져요.
어릴 때 좋은 사람을 만났던 기억, 나쁜 사람을 만났던 기억. 길을 걷다 무서운 개에게 쫓겨서 울면서 뛰던 기억, 그때 지나쳤던 점방, 구둣가게, 약국, 그리고 전화부스. 그러면서도 다른 강아지를 만나서 반가워서 손을 내밀었다 피를 본 기억. 그리고 어떨 때는 촉촉한 혀로 손에 인사를 건네던 강아지를 만난 기억까지. 그런 기억들이 저를 구성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피해야 할 강아지와 다가서도 되는 눈빛을 한 강아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저를 구성하는 추억들은 많지만 가장 자주 생각하는 시기는 7살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어드매의 시간들이에요. 그때 저희 집은 비디오 가게를 했어요. ‘책과 비디오’라는 아주 고전적인 이름을 가진 가게였죠.
유치원이 끝나고 언니랑 손을 잡고 가게를 들를 때도 있었고, 엄마를 따라 가게를 갈 때도 많았어요. 가게 문 앞에 놓여있던 반납함은 그때 제 기억으로는 꽤 높았는데 엄마가 열쇠로 반납함을 열면 책이 쏟아지진 않을까 몸을 움츠리며 반납된 책과 비디오들을 꺼내곤 했죠. 그걸 품 안에 그득그득 안고 가게로 들어가면 제가 정말 좋아하던 시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로 비디오를 돌리는 작업이었습니다. DVD가 거의 없던 시기라 비디오들이 반납되면 꼭 기계에 넣고 리와인드를 해야 했거든요. 테이프를 감는 기계가 따로 있었는데 아빠가 어느 날 새 기계를 가지고 왔던 기억이 나요. 샛노란 색이었는지, 새빨간 색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쨍한 색의 스포츠카 모양을 한 기계였어요. 뚜껑을 열고 테이프를 넣고 뚜껑을 꼬옥 닫고 버튼을 누르면 잘그러럭 하는 소리를 내며 테이프가 감기고 끝날 때 즈음에는 찰칵!인지 달칵!인지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어요. 그걸 다시 꺼내서 비디오 곽에 넣어 한쪽에 쌓아두면 엄마는 그걸 본래 있던 자리로 옮겨두곤 했죠.
지금도 저는 그때 생각을 아주 많이 해요.
가게 안쪽에는 엄청 큰 반사경이 천장에 붙어 있었어요. 아마도 도난과 파손 등을 우려해 달아둔 과거 버전의 CCTV였던 것 같아요. 그 반사경이 비추는 가게 뒤쪽까지 책장이 가득 차 있었는데 가장 뒤쪽 선반 두 개 사이에 판자를 걸쳐서 간이 책상을 만들고 거기서 숙제를 하곤 했어요. 제 바로 뒤쪽 책장에는 손을 뻗으면 닿는 위치에 <빨간 망토 차차>라는 그 당시에 좋아하던 만화책이 있어서 늘 반사경에 스스로가 비치는지 걱정하며 쭈뼛거리며 책장에 손을 뻗다 혼이 나곤 했어요.
그때의 기억은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좋아요.
카운터 의자는 높은 의자여서 '끙차' 소리를 내고 올라가야 했었는데 거기에 올라가면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발을 동당거리며 손님들과 인사하던 기억, 가게 앞을 지나가면 늘 마주치던 과일 가게 사장님과 붕어빵 사장님과 인사하던 기억. 그런 것들이 요즘은 더 많이 떠오릅니다.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무심하게 노이즈캔슬링을 켜고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걷다 보면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모두와 인사하고 다녔을까. 어떻게 모두들 그 인사를 다정하게 받아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거든요.
제가 그 시절을 자주 생각하는 것처럼 양도 매일매일 본인의 기억을 곱씹어요. 알파, 감마, 베타 저장체를 가득 채울 만큼 저장된 기억들을 반추하며 양은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하죠. 자신에게 차(tea)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요.
차를 만드는 모습도 좋고 찻잎이 부풀고 떠오르고 떨어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느끼지만, 그것을 자신이 감각할 수 없다는 것. 감각하지만 진짜 감각인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어딘가 혼란스러워하며 양은 자신에게도 진짜 기억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요. 장소 시간 그런 것들이 자신에게도 진짜, 이기를 원한다고요.
하지만 양이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니에요. 양이 사람이 되길 원했을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정말 사람다운 생각이기도 하고요. 하핫.
애벌레에겐 끝이 나비에겐 시작이라는 말이 있대요. 카이라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인 것 같다며 양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요. 양은 이상한 대답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는 괜찮다고요. 그 말을 하는 양의 얼굴은 어딘가 슬퍼 보여요. 어떤 끝이 새로운 시작이 아닐지언정 자기는 괜찮다는 말은 사실 슬프고 이상한 대답이잖아요. 그 사건과 자신을 아주 분리해서 하는 말이니까요. 내게 끝이라는 것이 온다면, 내게 새로운 시작이 온다면 이라는 전제가 아니라 남의 끝을 보더라도, 그 뒤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나는 괜찮다는 말이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양이 마주했던 끝들은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이미 여러 번 봐온 끝을. 어떤 관계가 끝나고 끝없는 공허가 찾아와도 새로운 기억 저장소는 생기고 또 기록은 시작된다는 것을 양은 이미 알고 있는 거죠. 괜찮아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은 괜찮다는 답을 했다는 걸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됩니다.
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
무가 없으면 유도 없다고 양은 말하면서 눈물을 떨어뜨려요. 물론 이 기억이 양의 것인지 카이라의 것인지 애매해요. (저는 카이라가 본인의 시선으로 떠올린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양이 울었는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주 너무 인간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하고 물론 저 역시 인간이기에 그 눈물을 제 나름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만남들이 없었고, 잃어본 적이 없었다면 그 시간들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거라는 마음으로 흘린 눈물이지 않았을까 하고요. 공허하고 상처받고 외롭고 우울한 시간을 지나더라도 아름다운 파편을 지니게 되었으니 괜찮다고요.
최근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엄마랑 얘기하다가 앞서 말한 비디오 가게에서의 추억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는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즐거운 추억인데 엄마는 그게 참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학원도 아닌 비디오 가게 뒤에서 그렇게 앉혀서 공부를 시키는 마음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아냐고, 아빠도 그걸 참 싫어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그 시간을 좋게 기억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이래서 같은 시간을 보내도 다르게 받아들이는구나.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편지를 쓰는 저도 없었을 것 같아요. 정말 there’s no something without nothing입니다.
“ 우리의 감각은 매번 다르게 저장되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들은 존재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우리 역시 존재할 수 있고 더 나아질 수 있다 “
영화의 중간, 에이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감각은 매번 다르게 저장되고 그 감각과 기억을 지닌 우리 역시 존재할 수 있다고요. 삶은 늘 휘몰아치는 감각을 전해주곤 합니다. 그게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안드로이드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억을 선별해서 저장한다는 것이 놀라운 것처럼요. 기록인 기억이 아니라 감각인 기억이 우리를 구성한다는 생각을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하게 됩니다. 양이 떠난 후에야 양이 얼마나 미카를 사랑했는지 깨닫는 것처럼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에 남겨진 우리는 그제야 사랑이 결국은 모든 것의 뿌리라는 걸 깨닫게 돼요.
저는 뜨개질을 좋아해요. 이것저것 뜨다 보면 자투리 실이 남게 되는데요. 자투리 실들을 통해서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답니다. 조각을 합쳐서 조각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이 편지도 하나의 조각이 돼 오늘 하루의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오늘은 간단히 편지를 써볼까 했는데 행복했던 시간들을 적다 보니 어느새 또 편지가 길어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