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렌트로 돌아올게요.
모두의 사랑을 받는 엔젤 역시 자신의 반쪽을 찾는 과정을 이어나가요. 그의 삶에는 동반자처럼 따라 다니는 또다른 반쪽이 있습니다. 바로 앞서 말한 에이즈에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것이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이들의 인생에 함께하는 좀 지긋지긋한 병일뿐이죠.
이 지긋지긋한 병이 내 삶을 가로막을지언정 이들은 전혀 오늘을 즐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아요. 죽음이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데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남은 시간은 너무너무 짧으니까요. 사실 1년은 무려 525,600분이나 된다는 것을, 그 순간순간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다보면 내 반쪽을 만나기도 하고 불같은 사랑을 하기도 하고 삶을 그 누구보다 충실하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엔젤은 말합니다. 집이 사라지고 내게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더라도 내 삶은 내 것이니까. 그리고 남은 친구들 역시 엔젤이 남긴 사랑을 잊지 않고 매분매초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120bpm> 이라는 영화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에이즈를 묘사해요. <120bpm.은 1980년대 후반, 에이즈가 확산되지만 신약 개발이 더딘 상황에서 투쟁하는 단체 act-up paris (액트업파리)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투쟁하고 피 흘립니다. 제약회사의 벽에 핏빛 물감을 던지며 투쟁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죠. 영화 제목이기도 한 ‘120bpm’은 심장 박동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한데 사실 우리는 모두 심장이 뛰는 사람들이잖아요. 모든 생명은 심장이 뛰고, 심장이 멎으면 생이 끝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이 참 공평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바로 그 부분이요.
이 영화를 봤을 즘 <13 후루츠케이크>라는 공연을 봤어요. 정동극장 세실에서 열흘 정도 진행했던 뮤지컬이었는데 텍스트와 미디어아트, 음악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실험성이 강한 공연이었어요. 많은 텍스트가 내포된 극인데 저는 관람 내내 몸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 없었어요. 배우들이 근육 하나하나를 써서 몸으로 어떤 감정들을 표현해내는데 아 살아있는 몸은 저렇게 숨쉬는구나,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공연은 ost가 발매되긴 했는데 무대와 출연자들이 너무 중요한 공연이었어서 노래만 듣자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몸은 투쟁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몸을 가진 이들은 늘 투쟁해요. 살아있다는 건 몸이 있다는 것. 몸이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 투쟁하는 몸은 아름다워요. 소리지르는 몸은 아름답고요. 존재는 아름답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13 후르츠케이크>를 보고 적어둔 메모에 이렇게 한 줄이 남아있더라구요. ‘silence = mort’ 침묵은 죽음이라고요.
우리는 끊임없이 요구하고 소리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으려해도 몸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버리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면 노동에 합당한 금액을 주길 요구하죠.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존재는, 생명은, 삶은 소리내며 시끄럽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내가 배고프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해줘야만 그것이 합당한 배고픔일까요? 그렇지 않죠. 나는 배가 고프니까, 나는 그것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존재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죠. 남이 부정한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아요. .
그러니까,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여자를 사랑할 것이며, 누군가는 남자를 사랑할 거에요. 누군가는 성애적 설렘을 느끼지 못하고 살 수도 있죠. 혹은 자신이 여자라는/남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끝없는 혼란과 싸울 수도 있어요. 그걸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을 부정할 수는 없죠. 내가 배고프다는 사실을 인정 받아야만 배고프다는 것이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할 방법은 없거든요.
<13 후르츠케이크>에서도, <120bpm>에서도, <렌트>에서도 이들은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이 생을 가장 충실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택하는 것이 사랑이에요. 후회없이 사랑하기, 미움이나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 가끔 사랑이 실패하기도 하지만 새 사랑을 찾아내기! 또 열심히 사랑하기! 대책 없어 보이는 삶의 태도인데 이게 또 어떻게 보면 사람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요. 사랑하며 살아가기!
이 많은 영화에서는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네가 살기를 바란다는 메시지입니다. 삶이 당신을 상처주더라도 살아가라고요. 침묵하며 버텨내는 삶이 아니라 소리내고 시끄럽게 즐겁게 오늘의 삶에 축배를 들며 그렇게 살아가자고요.
즐기며 사는 거야. (어떻게 즐기지?) 이렇게 손을 위로
형제여 즐기며 살아 (어디서 즐기지?) 바로 지금 여기
(…)
사람들은 날씨가 예전같지 않다네.
우리 엄마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지
가진대로 살아 그 안에서 만족해
즐기며 사는 거야 (어떻게 즐기지?) 이렇게 손을위로
형제여 즐기며 살아 (어디서 즐기지?) 바로 지금 여기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하데스타운> 속 넘버 ‘Livin’ it up on top’ 입니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극인데 초연 때도 이번 재연 때도 정말 좋았어요.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서 살아가자고요. 그 사랑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내가 가진 믿음을 기반으로 몇 번이고 같은 시도를 할 지언정 사랑하자고. 그 믿음이 언젠가는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힘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끝없이 해요. 편지를 보내는 이 시점에는 아마 부산 공연을 하고 있겠네요. 혹시 부산이시라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음악도 정말 좋지만 조명과 무대가 정말 아름다운 극이거든요.
이 편지를 보내는 지금 제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태국 치앙마이에 와있습니다. 몇 달 전 작품이 끝났을 때도 치앙마이에 왔었는데 우연히 태국 프라이드 먼스의 시작을 알리는 페스티벌이 치앙마이에서 열리더라구요. 한국과 비슷하게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행진하고 본인을 나타내는 축제였죠. 한국에서는 행진 때 혐오 세력이 옆에서 꽹가리를 치고 북을 치기에 경찰의 보호 아닌 보호를 받으며 행진하는 모습으로 접했는데 태국은 동남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시행될 나라라 그런지… 이곳엔 혐오세력이 눈에 띄질 않더라고요. (태국 동성결혼은 이제 승인이 된 상태고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동성혼, 입양, 상속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성애자들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합니다. 대만, 네팔에 이어 아시아에서 3번째로, 동남아시아에선 최초로 동성혼이 인정된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별로 주저하지 않아요. 해의 아이도, 달의 아이도, 땅의 아이도. 엔젤도 여기에선 모두 자기자신의 삶에 축배를 들어보여요.
그 길이 쉽진 않았겠지만, 살아있는 존재들이 그대로 살아있을 수 있는 이곳이 참 아름답게 느껴져요.
오늘도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우리의 존재함에 축배를 드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